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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여래좌상

목조여래좌상
유물명 목조여래좌상
다른 명칭 木造如來坐像, 아미타여래
시대 조선
작가
재질
크기 높이 49.5㎝
수량 3
분류 불교공예

설명

                                조선후기의 불교는 양란이후 건축물의 재건을 시작으로 사찰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하며, 중심 불전에 봉안되는 불, 보살은 승려 장인집단에 의해 제작되는 사례가 늘어난다. 
본관 소장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50cm, 슬폭 32cm, 어깨폭 21cm로 불상 가운데는 크지 않은 편에 속한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중품중생의 아미타수인을 결하고 있으며, 신체는 거의 직선에 가깝고 장방형의 얼굴은 약간 숙였다. 
불두의 나발은 앞과 뒷부분이 부분적으로 떨어져나갔으며, 눈썹과 콧털은 녹, 입술은 주색을 칠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신체의 비례는 어깨 폭과 무릎 폭이 약 1:1.5로 안정적이며 흘러내리는 대의자락은 정돈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무릎은 낮게 표현하고 대의의 앞자락은 한쪽에서만 흘러내려와 부채를 펼쳐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율동감을 주고 있다. 
‘U’자형으로 길게 내려온 대의는 배 아랫부분에서 겹쳐져있고 오른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대의자락은 모서리부분이 물방울처럼 내려와 마치 소매를 집어 올린 듯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대의 안에 승각기(僧脚崎)는 사선으로 표현하였으며 왼쪽어깨로 넘어간 대의자락은 왼쪽어깨 뒤쪽으로 넘어가 걸쳐있다. 
상(像)의 전체적인 신체비례와 세부적인 특징을 고려하면 조각승 가운데 진열(進悅)의 작품으로 추정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진열은 1695년 전북 전주 서고사 나한전의 가섭존자상의 발원문을 통해서 성심(性沈)의 문하에서 불상 제작의 수련기를 거쳤음을 알 수 있으며, 
1719년 목포 달성사 소장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을 개금한 사실을 통해서 활동시기를 1695년에서 1719년으로 보고 있다. 
현재 진열의 수화승으로써의 기년작은 1706년의 곡성 서산사 목조관음보살좌상, 1713년 경기도 고양 상운사 아미타삼존불상(관음보살은 다른 시기로 조성추정), 
1722년 부산 범어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남아있으며, 진열 作이라고 추정되는 작품들이 조사를 통해 밝혀지기 시작하고 있다. 
진열(進悅) 作이라고 추정되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안정적인 신체비례와 정돈된 옷주름, 앞쪽으로 넓게 펼쳐지는 대의자락, 
그리고 어깨너머로 내려오는 대의 끝자락의 형태를 통해서 양식적인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본관 소장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특히 1713년 경기도 고양 상운사의 불상들과 양식적인 특징을 같이하고 있어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보살상보다는 여래상을 조금 크게 제작한 듯한 이 삼존상의 양식은 조각승 진열이 자신만의 개성을 정착시킨 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관 소장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또한 18세기 초반의 시기적인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상으로 간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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