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의 나날들

진주성도

조선 후기는 전란의 시대였습니다. 선비들이 꿈꿨던 유교적 이상 국가는 계속된 전쟁으로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선비는 칼을 차고 나섰고, 평민들 역시 농기구를 버리고 무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마을과 성을 지키고 보호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그들이 지킨 우리의 성을 만나봅니다.

먼저 고려 말~조선 초에 돌로 쌓아 만든 진주성이 있습니다. 논개의 전설로 익숙한 진주성은 군사적 요충지로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성 앞으로 흐르는 남강(南江)과 그 주변의 수려한 풍광을 품은 진주성은 19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많이 그려졌습니다. 이 아름다운 성을 지키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 호남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고, 결국 자신의 이상향을 지키는 첫걸음이었기에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 중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송암에 남겨진 10폭 병풍의 이 그림은 현재 남아있는 18점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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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도

평양성도

평양성은 고조선 때부터 있었다는 학설이 있을 정도로 우리의 역사와 오랫동안 함께한 성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왜의 대군에게 점령되기도 했지만, 이후 조명연합군이 반년 간의 협공으로 탈환한 성이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 가장 이른 시기에 그려진 평양성도가 이곳 송암미술관에 있습니다. 역사적 고도(古都)이자 국방・외교상 거점이었고, 무역과 상업이 번성하여 물자가 풍부한 도시였던 평양성을 8폭 병풍의 장대한 화면에 섬세한 필치로 화려하게 재현한 그림입니다. 사진이 없던 시절, 이 섬세한 그림은 당시 도시의 풍경을 생생하게 만나게 해주는 소중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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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와 진경산수화의 시절

책거리도

조선 후기 사회는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미술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나타났는데 우리나라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진경산수화의 등장과 민화, 풍속화가 유행한 것입니다.
이상향을 상상으로 그리던 이전 그림과는 달리 진경산수화는 실제 조선의 풍경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놓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자유분방했던 서민들의 민화는 자신들의 소망과 함께 그들만의 독특한 색감과 세련된 미의식을 활발하게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박물관 전시에서 그 현대적인 세련됨으로 찬사를 받은 책가도는 대표적인 민화 중 하나입니다.
책가도는 책거리 그림으로, 서책, 골동품, 문방사우 외에도 화병, 필통, 도자기, 안경 등의 다양한 기물들과 과일, 꽃을 함께 배치시킨 그림입니다. 당시 화원의 시험 주제로도 활용되었을 정도로 매우 유행했던 그림입니다.

소나무와 영지

조선 후기 대표적인 화가인 겸재 정선은 1676년(숙종 2년) 몰락한 양반 가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그림에 놀라운 재능을 보였습니다.
겸재는 서른 살이 되자 전국 각지를 돌며 경치 좋은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독특한 시선과 화폭에 재현된 우리의 아름다운 산천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진경산수화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오직 그림 그리는 일에 평생 힘을 기울이던 겸재는 나이가 들어서도 줄곧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습니다. 송암미술관에 있는 <노송영지도>는 겸재가 80세에도 여전히 붓을 놓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림의 우측 하단에 “을해추일(乙亥秋日) 겸재팔십세작(謙齋八十 歲作)”이라는 글귀는 그림의 제작연도를 알려줍니다.
화면 가득 위용을 자랑하듯 노송이 솔잎을 푸르게 펼치고 있고, 그 나무 아래로 구름 모양의 영지버섯이 솟아 있습니다. 쓸쓸하면서도 의연한 자태가 인생 말년 겸재의 심경을 반영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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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영지도
용으로 변하는 잉어

용으로 변하는 잉어

파도 위를 뛰어오르는 잉어는 등용문 설화와 관련되는 그림입니다.
중국 황하 상류에는 용문(龍門) 폭포가 있는데, 봄이 되면 잉어들이 거친 물살을 거스르며 앞다투어 이 폭포를 뛰어오른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용감하고 신령스러운 한 마리 잉어만이 용문을 통과하여 용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 고사로 인해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는 ‘출세’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노력하면 잉어가 용이 되듯 열심히 공부한 선비가 과거에 합격하여 입신양명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송암미술관은 인천 문학산 끝자락, 서해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아담한 미술관입니다.
봄이면 정원 사이로 색색의 화려한 꽃들이 만개하고 겨울이면 소나무 위에 하얀 눈꽃이 피어나는 그곳에 빨간 벽돌의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송암미술관을 설립한 분은 개성이 고향이었는데, 인천에서 사업을 하면서 고향인 송도를 생각하며 유물을 수집했습니다. 평생 수집한 유물과 미술관을 인천시에 기증하면서 지금의 송암미술관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분의 호가 소나무와 바위, 송암이기 때문에 송암미술관이 되었습니다.

송암미술관에는 만여 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유물을 분야별로 전시하고 있어 한국 미술의 흐름과 특징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송암에서의 하루는 우리 도자기와 서화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만족스러운 시간을 선사해 줍니다. 또한 유물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다채로운 특별전과 체험이 찾는 이들을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긴 여운을 기대할 수 있는 곳,
작지만 알차며, 친근하고 깊게 다가갈 수 있는 곳,
바로 송암미술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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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미술관

제작 : (주)집쇼코리아